| 생체실험등 日帝만행 생생히 증언
▲ 사진자료를 모은 한국사회문화연구원 홍사광(왼쪽) 이사장과 게명대 동산의료원 정성길(오른쪽) 명예박물관장.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은 뒤 제를 지내고 있는 일본인, 1919년 1월 22일 서거 직전 고종황제의 마지막 모습, 겁탈당하고 있는 여인, 산채로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는 731부대 희생자의 부릅뜬 눈…. 일제 만행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진 1000여점이 발굴됐다. 18일 발매하는 주간조선(1792호)은 100년 전 역사의 현장을 담은 이들 사진을 단독 입수, 지상 공개한다. 이 사진들은 홍사광 한국사회문화연구원 이사장과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지난 7년간 17개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것으로, 한말과 일제 때의 희귀 사진들이다.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도 많다.
▲ ‘한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높은 산마다 꼭대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가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태평양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43년, 일본군이 무당을 앞세워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천황(텐노)의 시조신이자 일본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진이 발견되었다. 이 사진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백두산 등정’(1943)에 실린 것으로, 용산주둔 18연대원들과 일본인 식물학자들로 구성된 백두산 탐구 등행연성대가 천지에서 목욕하고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사료수집가 정성길(계명대 공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ㆍ홍사광씨(한국사회문화연구원)이 구입한 것이다. 주간조선(1792호)는 이 사진 외에도 정ㆍ홍씨가 발굴한 일제의 잔혹한 식민 통치를 증언하는 사진들을 공개한다. /이범진 기자 “일본·중국·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 자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일본은 30번도 넘게 갔습니다. 고물상·헌책방을 뒤지고, 당시 한·중·일 3국에 파견됐던 선교사, 외국 특파원·주재원들의 후손까지 찾아가 만났습니다. 사진 1만여점, 골동품까지 1만5000점을 모았습니다.” 두 사람은 “사료 검증을 위해 선교사·주재원들의 기록·유서를 읽고, 외국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검토하는데 전문가를 초빙했다”고 말했다.
▲ 군사훈련 참관하는 일본 천황 군사훈련을 바라보는 일제 수뇌부와 다이쇼(大正·1912~1926) 천황의 모습(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천황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황군(천황의 군대)을 상징하는 붉은 완장을 차고 있다. 정성길씨는 “치욕의 역사도 보존돼야 할 역사”라면서 “일제 통치자들이 이 땅에서 뭘 했는지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 일본도로 처형하는 일본군인 일본 군인이 중국인 옷을 입은 사람의 목을 자르고 있다. 독립군은 신분 위장을 위해 중국인 복장을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복장으로만 보면 중국인과의 구별이 쉽지 않다. 국민대 국사학과의 장석흥 교수는 “사진의 각도가 다른 것으로 미뤄, 3명 이상이 동시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독립군이라고 무조건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진을 본 학계는 “놀랍다”는 반응이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상당수가 처음 접하는 사진들”이라며 “그 자체가 훌륭한 사료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원 홍선표 박사도 “좀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현재로선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서거하던 해의 고종 집무를 보기 위해 겨울 옷을 입고 선원정에서 인정전으로 나서고 있는 1919년의 고종 황제. 고종은 그해 1월 22일 갑자기 서거했다. 사진을 수집한 두 사람은 ‘평화공원’ 건립을 꿈꾸고 있다. “신미양요(1871년)의 무대이자 외세와의 격전지였던 강화도에 평화의 탑과 박물관을 짓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검토 중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비극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보고 느끼고 싶어, UN과 협력하는 방안도 찾고 있습니다.”
(이범진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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